한 여성의 불운했던 인생이야기- 자본주의 허상이 만들어낸 비극

그녀는 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 했는가? 

 

 

7년 만에 충무로로 복귀한 변영주 감독과 이선균, 김민희, 조성하 주연으로 재구성된 <화차>는 대중소설 작가이자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화차』와 비슷하면서도 무언가 색다른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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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화차』는 휴직중인 형사 혼마 슌스케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혼마 슌스케의 먼 친척 가즈야는 약혼녀 세키네 쇼코와 결혼을 앞두고, 그녀의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심사과정에서 과거에 그녀가 개인파산을 신청한 사실을 알게 된다. 가즈야가 세키네 쇼코에게 개인파산신청서를 보여주고, 그녀는 갑자기 새파랗게 질려 다음날 아무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춘다. 형사 혼마 슌스케는 가즈야의 부탁으로 그녀의 그림자를 밟기 시작하고, 서서히 그녀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원작 『화차』는 거품경제가 붕괴한 직후인 1990년대 초반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여, 카드빚, 담보대출, 사채, 개인파산 등 현대인의 실생활에 결코 멀지 않은 소재들을 한 여성, 신조 교코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면, 영화 <화차>는 1990년대 말 IMF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빚에 시달리는 부모로 인해 자신의 인생까지 파국으로 치닫게 된 소설속의 신조 교코와 영화 속의 차경선, 다중채무자라는 딱지를 버리고 타인의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세키네 쇼코와 강선영으로 살면서 그녀들이 행했던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사건들......


영화와 소설을 보는 내내, 새로운 삶을 살기위해 주인공이 저지르는 비도덕적인 행동은 용서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 부모의 빚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벗어날 수 없었던 주인공의 모습은 너무 애처롭고 슬퍼보였다. 특히 영화 끝부분에 김민희가 형사에게 쫓기면서 달리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주인공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또한 평범한 삶에 대한 주인공의 갈망뿐만 아니라, 사채, 개인파산, 인신매매, 담보대출, 관심 받지 못하고 있는 1인 가족, 보이스 피싱이나 개인정보유출 등 현 사회의 어두운 한 부분들을 엿보고, 현대 소비사회를 질책하는 신랄한 메시지도 읽을 수 있었다.

 

 

뱀은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실은 목숨 걸고 하는 거래요. 그러니 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하겠죠. 그런데도 허물을 벗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목숨 걸고 몇 번이고 죽어라 허물을 벗다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 믿기 때문이래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 (중략) 이 세상에는 다리를 원하지만 허물벗기에 지쳐버렸거나 게으름뱅이거나 벗는 방법을 모르는 뱀이 수없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말씀. 그리고 뱀들은 빚을 내서라도 그 거울을 사고 싶어 하는 거예요. _ 본문에서

 

 

소설에서 현대사회의 맹점을 비유적으로 지적한 부분 중의 하나이다. 소설에서는 끝없는 사람들의 욕망을 ‘허물 벗는 뱀’에 비유했다면, 영화에서는 ‘부화하는 나비’에 비유하여 보여준다. 제목 ‘화차(火車)’는 ‘생전에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실어 나르는 불수레’를 뜻한다. 실패해 버린 과거를 들키지 않기 위해, 새로운 삶을 살기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주인공은 ‘화차(火車)’를 벗어날 수 없다. 너무나도 슬픈 현실이다. 

 

소설에서는 휴직 중인 형사 혼마스케의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영화에서는 형사와 약혼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영화에서 약혼녀의 모습을 조금 더 능동적으로 그리고, 약혼자와 약혼녀의 사랑을 조금 더 깊이 볼 수 있다는 점, 서로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는 것 등 일본의 관점에서 그린 원작 소설 『화차』와 한국의 관점에서 그린 영화 <화차>를 서로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흥미진진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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