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발전하고 부가 축적 될수록 과연 우리는 행복에 좀 더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문명화와 부의 증대가 행복의 척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요즘 자주 들리는 말 중에 ‘디스토피아’라는 말이 있다. 이는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단화한 암울한 미래상을 말한다. 이는 가공의 이상향을 말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묘사하며 지상낙원을 뜻하는 ‘유토피아’의 반대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늘 행복을 좇으면서도 행복과는 더욱 멀어지는 아이러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2012년도 벌써 3월에 다다른 지금, 암울한 현대의 부정적인 모습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문학작품들을 통해 우리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유토피아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디뎌 보면 어떨까. 우리가 꿈꾸는 밝은 미래를 논하기 위해서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을 소개한다.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과연 제목과 같이 멋진 신세계가 나오는 내용일까? 사실, 제목처럼 멋진 신세계를 그려내는 책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세계는 과학기술이 대단히 발전한 사회로, 그로 인해 모두 인공적으로 제조되고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낸 과학과 성(性) 앞에 노예로 전락한다. 모든 인간적 가치와 존엄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비록 작가의 상상을 바탕으로 기술된 소설이지만. 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는 소설 내용과 같은 멋지지 않은 멋진 신세계가 정말 우리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책이다.

 




코틀로반 |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코틀로반>은 ‘러시아의 조지 오웰’로 불리는, 철도 노동자 출신의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작품이다. 이 소설은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후, 러시아의 한 시골마을에서 집단농장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배경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 보다는 전체적으로 우울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디스토피아’적 소설로 소개되고 있다.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를 예견한 글이기에 1980년대 후반 소련이 개혁, 개방의 파도에 휩쓸리고 나서야 대중에게 공개된 책이다.





우리들 |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환상과 리얼리티, 의식과 무의식을 그린 소설이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반(反)유토피아 소설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오웰의 <1984> 등 디스토피아적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구 소련은 이 작품을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간주하고 소련 내에서 출판을 계속 금지했다가 고르바초프의 뻬레스뜨로이카 선풍을 타고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브이 포 벤데타 ㅣ 제임스 맥티그

이 영화는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2040년 영국을 배경으로 전체주의에 의해 인간성을 말살당하며, 파멸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리 곳곳에 카메라와 녹음 장치가 설치되고 모든 이들이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던 도중에 ‘V’라는 이니셜로만 알려진 의문의 사나이를 통해 전체주의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며,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처럼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두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고 우리의 자유와 책임을 다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은 2011년이다. 2040년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영화 속에서나 그려지는 2040년의 모습이 머지않아 우리의 실제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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