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이렇게도 쓸데없는 농담을 늘어놓다니. 클레멘스 씨는 도대체가 교양과는 담을 쌓고 있는 모양이다.’ 만약 당신이 소설가라고 가장해보자. 비평가나 언론매체가 이처럼 모질게 당신의 글을 질타한다면 어떤 심정일까. 분노가 치밀수도 있고, 실망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공개된 비평을 어쩔 수가 없는 법. ‘시간이 지나면 대중이 알아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비평을 받은 인물 역시 그러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마크 트웨인이었고 ‘쓸데없는 농담’이라고 비하를 받은 작품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다.

 
 
↑ 명작가로 꼽히는 마크트웨인(좌), 톨스토이(우)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처럼 출간 당시 혹평을 받았지만 훗날 전세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걸작’으로 불린 작품, 혹은 그러한 걸작을 써낸 ‘작가’는 생각보다 많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명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쓰고 한 신문사로부터 “감성적인 쓰레기. 단 한 페이지라도 사상이라 할 만한 것을 담고 있는 곳이 있다면 내게 보여주시라”는 혹평을 들었고, J. 조이스의 장편소설 <율리시스>는 “책이 산만하고 문학적으로 상스럽다”는 비난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그것도 세계적인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에게서 나온 비평이었다.


수많은 작가들이 평단이나 언론으로부터 혹평을 받고 상처를 받았지만, 사실 책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결국 독자의 몫이다. 비평은 특정인물, 집단의 의견으로 독자들이 참고할 만한 정보일 뿐이다. 책의 본질은 작가와 독자의 감정적 소통이다. 그렇다고 비평이 필요 없거나,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명작도 악평이라는 고난을 제대로 견뎌내야 살아남을 수 있듯이, 비평은 명작탄생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국내에는 인터넷이나 신문지면을 통해 마치 광고처럼 뻔하고, 칭찬일색인 ‘주례사’ 비평이 대부분이다. 수백 년 넘게 전세계의 독자들에게 읽히는 ‘악평 받은 명작’을 살펴보면 어쩌면 쓴소리에 직설적 비평이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더 흥미롭고 도움이 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오만과 편견>
“영국사회의 빌어먹을 관습에 갇힌 작품”


 


‘오스틴의 소설을 왜 그토록 좋아하세요? 저는 그 점이 이상해요. 저 같으면 오스틴의 소설에 나오는 신사 숙녀들과 그들의 우아하지만 폐쇄적인 집에서 같이 살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아요. 오스틴은 그저 약삭빠르고 영민할 뿐이에요.’


- 샬럿 브론테가 G. H. 류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제인 에어>로 잘 알려진 샬럿 브론테가 지인과 주고 받은 편지에 담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악평이다. <오만과 편견>은 현재 전세계에 번역, 출간돼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리메이크되어 그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은 출간 이후 줄곧 악평에 시달렸다. 특히 소설가나 시인 등 같은 문인들에게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영국의 소설가 메리 러셀 미트퍼드“엄마 말로는 오스틴은 당시 제일 예쁘고 제일 바보 같았으며, 제일 가식이 많은 인물, 부나비처럼 남편감을 찾아 다니던 모습으로 기억된다는군요”라고 비꼬았고, 미국의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일기>라는 책을 통해서 ”오스틴의 소설은 어조가 조야하고 예술적 창의성도 형편없으며 영국사회의 빌어먹을 관습에 갇혀 있는 데다 재능이라 기지, 또는 세계에 대한 지식도 부족한데 말이다”고 비난했다.

 

<오만과 편견>은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으로 1813년 출간됐다. 이 책은 1790년대 말에 쓰여졌지만 여러 출판사에 거절을 당해 출간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10년이 넘게 흘러 제인 오스틴이<이성과 감성>의 흥행에 힘입어 출간된 작품이다. 내용은 익히 알려졌듯,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오만’이라는 편견을 깨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제인 오스틴은 이 작품으로 인해 영국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여류작가로 인식될 수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
“무시해도 좋은 소설”

 

 

 

‘어떤 식으로든 생생한 작품이 아니라면 오래도록 살아남지 못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일시적인 유행으로 그칠 것이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 

‘다소 느슨하고 다소 물렁물렁하며 조금 지나칠 정도로 인위적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무시해도 좋은 소설에 속한다.’ (스프링필드 리버블리컨)

‘F. 스콧 피츠제럴드씨는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로맨스든 멜로드라마든 아니면 뉴욕 상류 사회를 곧이곧대로 묘사한 것이든, 바보 같은 이야기다.’ (새터데이 리뷰 오브 리터리치)

 

출간 직후 유력 언론매체로부터 ‘3연타’를 당한 작품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언론으로부터 ‘일시적 유행’, ‘무시해도 좋은 소설’, ‘바보 같은 이야기’로 혹평 받은 이 작품은 불과 수십 년 후에 독자와 평단으로부터는 ‘20세기 초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겠지.”라고 극찬할 정도로 <위대한 개츠비>는 후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명작으로 손꼽힌다. 당시 혹평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20세기 가장 뛰어난 미국 소설 가운데 한 작품으로 꼽힌다. 소설은 1922년 미국 뉴욕과 롱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 무너져 가는 아메리칸 드림을 예리한 시각으로 풀어낸 것이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가난 때문에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애인을 되찾기 위한 개츠비의 허망한 노력과 그 속의 유산계급의 퇴폐상이 주요 줄거리다. <위대한 개츠비>는 ‘아메리카 드림’으로 상징되는 성공을 향한 물질적 풍속이 얼마나 허망하고 비극적인지 잘 묘사하고 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을 주는 작품”

 

  

 

‘독자들이 이 책을 사는 데 쓴 돈은 적게 잡아도 1백만 달러 정도 될 것이다. 그 돈으로 독자들이 얻은 것이라고는 34페이지 정도에 불과하다. 이 34페이지는 스페인 내전 초기 어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대량 살상을 묘사한 부분이다. 헤밍웨이 씨, 그 살상 장면만 따로 출간해 주시오.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잊어버리시오. 스페인 내전 이야기라면 앙드레 말로에게 맡겨 두시오.’ (커먼윌)  

 

‘이 책은 즐거움이 아니라 엄청난 고통을 준다. 문학으로서 이 책은 천재성을 진정시켜 주는 진중함이 결여되어 있다. 그 때문에 빛나는 점들마저도 흐릿해질 뿐만 아니라, 위험한 영향력을 가진 책이 되고 말았다.’ (카톨릭 월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헤밍웨이가 1936년 스페인 내란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쓴 책이다. 판매에서 높은 성공을 거두지만, 출간 당시에는 호의적인 평가와 비난이 섞인 평가가 동시에 쏟아졌다. 본인의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기에 생생한 묘사가 장점으로 꼽혔지만, 그로 인한 파격성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더불어 대량 살상 등의 묘사 외에 다른 부분은 볼 것이 없다는 원색적인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스페인 내전 등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 의해서 악평을 받았던 부분도 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게리 쿠퍼, 잉그리드 버그만 등이 주연을 한 동명영화로도 리메이크, 큰 흥행을 거두면서 그 인기를 지금까지 누리고 있다.

 

2012년 새해 들어서 가장 뜨거운 외국작가 중에 한 명은 헤밍웨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나면서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비롯해,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이 국내에서 재출간 될 예정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란에 참전한 미국 청년 조버트 조던의 모습을 통해 자유의 의미와 전세계적인 연대의 책임성 등을 시사하고 있다. 허무에서 긍정으로 변모한 헤밍웨이의 사상적 변화를 찾아볼 수 있는 작품으로, 헤밍웨이가 현대 미국 리얼리즘의 거장으로 불릴 수 있는 발판이 됐다.

 


<햄릿>
“조야하고 야만적인 작품”

 

  

 

‘조야하고 야만적인 작품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라면 아무리 상스러운 사람이라도 참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술 취한 야만인이 쓴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볼테르 작품집 중에서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도 악평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이자 작가인 볼테르는 자신의 작품집을 통해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조야하고 야만적’이라고 평가했다. 1600년 초기에 출간돼 400년이 넘도록 수많은 이들에 의해 읽히고 재해석되면서 ‘최고의 비극’이라고 꼽히고 있는 지금의 평가와는 매우 극명하게 갈린다. 사실 <햄릿>뿐만이 아니다. <햄릿>과 함께 4대 비극으로 손꼽히는 <오셀로>, <리어왕>도 평단의 악평에 시달려야 했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조지 버나드 쇼는 <오셀로>를 두고 “순전한 멜로드라마. 피부 아래로 파고드는 인물 묘사로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고 평가절하했으며, <리어왕>은 “심각할 정도로 미완성작”이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죽느냐 사느냐”는 <햄릿>을 대표하는 한 대목으로, 이 작품은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왕위를 빼앗긴 주인공 햄릿이 부왕의 망령에 의해 겪는 내면의 갈등과 복수가 치밀하게 담긴 작품이다. 서구 문학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되는 이 작품은 영화, 연극, 뮤지컬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품과 다양한 분야로 끊임없이 재해석됐다. 꽤나 많은 이들로부터, 오랫동안 이어진 비평이 전혀 의식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갖게 된 명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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