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TV에서 ‘독설가’가 환영 받는 시대다. 몇몇 연예인만이 솔직, 담백을 넘어선 ‘과감한’ 발언으로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니다. 독설의 매력은 사람들의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주는 데 있다. 차마 내 입으로 말하지 못했던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속 시원함. 그 매력을 소설 속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독설가들은 하나같이 ‘독’만 내뱉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삶에 대한 통찰이 있다. 복잡한 인생의 길목에서 또 다른 길을 보여주는 독설가의 매력을 알아보자.



니코스 카잔차스키 <그리스인 조르바>


“두목, 인간이란 짐승이에요.” 단장으로 자갈을 후려치며 그가 말을 이었다. “... 짐승이라도 엄청난 짐승이에요. 그런데도 두목은 이걸 알지 못해요. 당신에겐 이 인간이라는 것, 세상사라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모양인데... 내게 물어봐요! 짐승이라고 대답할게요. 이 짐승을 사납게 대하면, 당신을 존경하고 두려워해요. 친절하게 대하면 눈이라도 뽑아 갈 거요. 두목, 거리를 둬요! 놈들 간덩이를 키우지 말아요. 우리는 평등하다, 우리에겐 똑같은 권리가 있다, 이따위 소리는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당신에게 달려들어 당신 권리까지 빼앗고 당신 빵을 훔치고 굶어 죽게 할거요. 두목, 좋은 걸 다 걸고 충고하건대, 거리를 둬요!”


- <그리스인 조르바> 본문 중에서


카잔차스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놀랍도록 육체적이고 악마적인 그의 심성은 ‘책벌레’인 주인공에게 일종의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하나님과 악마는 하나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조르바, 어떤 것이 탐날 때는 그것을 갖고야 말고 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향하는 길은 포도주와 여자를 통해서라고 말하는 그다. 조르바의 거침없는 기행은 책을 보는 내내 우리 안에서 잠들고 있는 ‘육체의 미학’을 꿈틀거리게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나서도 ‘책벌레’로 남아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삶에 빛과 어둠이 있다면 조르바는 어둠을 직시하는 인물이다. 인생의 진리를 책에서만 찾는다면 조르바의 독설에 귀를 기울일 것. 피가 펄펄 끓는 모험이 기다리는 삶을 살고 싶어질 것이다.


뮈리엘 바르베리 <고슴도치의 우아함>

이런 부류 중에는 아빠와 저녁식사를 하는 냉소적인 사람들도 포함된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를 깨닫고 만족한 듯 "우리의 어릴 적 꿈은 어찌되었지?" 하고 묻는다. 그러면서 "그 꿈들은 날아갔고, 인생은 엉터리야."라고 답한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이런 가짜 명석함이 정말 싫다. 사실 그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힘센 깡패처럼 굴지만 실제로는 울고 싶은 아이들과 똑같다.


- <고슴도치의 우아함> 본문 중에서


이 책의 주인공은 12살짜리 소녀 팔로마다. 팔로마는 스스로 자신의 유년기 종식을 선언한다. 그녀는 그르넬가 7번지의 고급 아파트에 살지만 주위의 가식적이고 멍청한 어른들이 우습기만 하다. 한편, 소설의 다른 주인공은 54살의 르네. 그녀는 이 아파트의 수위다. 뚱뚱하고 혼자 사는 수위 아줌마가 온갖 인문학적 교양을 쌓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다. 르네는 자신의 우둔함을 ‘가장’하기까지 한다. 소설은 팔로마와 르네의 시점을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팔로마와 르네는 세상을 바라보는 확고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비록 ‘독설’이긴 하지만,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말이 날카롭고 정교하다. 그녀들의 ‘빈정거림’이 때로 현학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식의 향연이라 생각하면 즐겁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

이러한 작문에서 공통적인 특징은 첫째로, 그 안에 소중히 간직된 감상력이었다. 그 다음은 무의미한 미사여구의 나열, 그리고 귀중한 어구를 함부로 늘어놓아 닳게 만드는 경향이었다. 게다가 더 눈에 거슬리는 점은, 꼭 마지막에다 설교를 늘어놓아 안 그래도 따분한 내용을 더욱 지루하게 만드는 것이다. 작문의 제목이 무엇이든 간에 억지로 무리하게 왜곡시켜서까지 도덕적, 종교적인 교훈을 꼬리처럼 달고 있는 것이다. (중략) 이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접어두기로 하자. 진실을 까발리는 게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 <톰 소여의 모험> 본문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말썽꾸러기 ‘톰 소여’의 모험담은 책을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재미있는 것은 마냥 어른을 놀려먹는 톰의 모습이 아니라, 때때로 또래 아이들과 똑같이 어른에게 혼이 날까봐 조마조마한 모습이다. 톰은 여러 가지 모험을 겪으면서 성숙되어 간다. 마크 트웨인이 설정한 <톰 소여의 모험>의 화자는 ‘톰’이 아니다. ‘전지적 시점’의 화자는 유머와 풍자를 섞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때문에 마냥 말썽꾸러기인 ‘톰’의 시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톰을 둘러싼 세계를 넓게 볼 수 있다. 즉, 독설가는 ‘톰’이 아니라 마크 트웨인임 셈이다. 말썽꾸러기 ‘톰’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작가의 풍자 또한 곳곳에서 빛나는 소설이다.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그리고 그 시들과 더불어 그분의 사랑도 끝났죠." 엘리자베스가 참다못해 말했다. "같은 방식으로 사랑이 끝나버린 예는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가 사랑을 몰아내는 데 효과적이라는 걸 누가 처음 발견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항상 시가 사랑의 양식(糧食)이라고 생각해 왔는데요." 다아시 씨가 말했다.
"훌륭하고 굳건하며 건강한 사랑의 경우에는 그럴 수 있겠지요. 원래 강한 사랑이라면 무엇이든 흡수해서 살찔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단지 얄팍하고 일시적인 기분일 뿐이라면, 훌륭한 소네트를 한 편 짓고 나면 모조리 고갈되고 마는 게 당연하겠지요." 다아시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었다.


- <오만과 편견> 본문 중에서


너무나 유명한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해야 할 말은 모두 하는 성격이다. 그녀의 당돌함은 당시의 일반적인 여성관을 앞지른 듯싶다. 지금에야 씩씩한 ‘캔디형’ 여주인공들이 많지만, 엘리자베스가 그의 원조가 아닐까?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남자에게도 절대 주눅 들지 않고 조목조목 논리를 펼쳐가고, 호들갑 떠는 어머니와 철없는 동생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그녀가 결국엔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순정만화처럼 재미있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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