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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시간을 분절하는 단위인 ‘나이’ 중에서도 유독 큰 의미를 갖는 숫자가 있다. 첫 번째가 스물, 그 다음이 서른이다. 스물과 서른은 ‘청춘’을 표상하는 나이임에 틀림없다. 서른이 농익은 청춘이라면 스물은 이제 막 망울을 터뜨린 청춘일 게다.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은 그 시작되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이 다음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몰랐던 스무 살 여자애였다. 세상은 텅 비어 있었고 무엇을 해도 심심했고 아무것도 긍정할 수 없었다. 다만 아주 막연히 어딘가로 가고 싶었다." (7쪽)

 

시작되는 청춘에는 으레 성장통이 따른다. 생이란 ‘너무도 사소해서 이걸 하든, 저걸 하든, 뭔가를 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든 차이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성장통은 스무 살에게 제 존재를 알린다. 자다가 느닷없이 다리에 쥐가 나듯, 예상치 못한 통증을 겪게 되는 것이다.

스무 살 이전의 이들에게 스무 살은 유예시켰던 ‘자유’를 되찾는 지점이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약속이다. 한편 스무 살 이후의 이들에게는 영화의 흔적만 남은 옛 성터 같은 것 혹은 되새기기도 끔찍한 어젯밤의 악몽이다. 정작 스무 살의 실제는 어떠한가. 준비 없이 주워진 방대한 ‘자유’는 무위에 대한 ‘초조’로, 선택항이 너무 많은 ‘가능성’은 사실은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막막함’으로 바뀌어 버린다. 웃는 낯을 하고서는 매질을 하는 셈이다.

 

"스무 살이란 원래 막막하라고 있는 나이 같았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있는 나이……" (83쪽)

 

스무 살 여름을 맞은 수련은 방학 동안 무엇을 하든 집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엄마의 고함 소리와 위협적인 아버지의 침묵, 법석을 떠는 어린 동생들, 자궁암으로 앓아 누운 할머니, 집 안 곳곳에 밴 악취’로 대변되는 수련의 집은 누구든 기어이 수돗가로 달려가 ‘구역질’을 할 만한 곳이다. 수련은 우연한 기회로 연극을 시작하게 되고 그곳에서 스물과 서른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성장은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고독이며 비밀이다." (31쪽)

 

수련과 함께 연극을 하는 이들은 모두 어딘가 비틀린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비틀린 삶’이란 말은 옳지 않은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온전한 삶’은 없으므로. 그렇게 그들은 좁고 더운 소극장 안에서 고독하고 비밀스러운 성장을 하고 있다. ‘이 세계에 대해 가정하지 않고, 이유를 묻지도 않으며 그냥 묵묵하게 사는’ 어른들과는 달리 성장하는 청춘들은 세상 모든 것에 가정과 의문을 품은 채 여기저기 부딪히고 까져가며 지금을 살아낸다.

 

"누가 스무 살을 그 자체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자신조차 모르는 무정형의 존재를……" (35쪽)

 

내게 스무 살은 그 숫자가 가진 ‘상징’을 감당해야 한다는 이상한 당위에 빠지기 쉬운 나이였다. 세상이 멋대로 부여한 ‘빛나는 나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경험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을 갖지 못한 나는 때로 초조하고 울적해졌다. 밀어도 가지 않는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스무 살인 나는 스무 살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역시나 그것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이제는 어렴풋하게 말할 수 있다. ‘스무 살은 스무 살 일뿐’이라고. 그러니까 그것에 어떠한 주석도 달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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