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화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사랑, 전쟁, 신 같은 추상적인 이야깃거리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에‘무슨 이야기를 할까요?’라고 말하면 대화의 폭은 넓어진다. 따라서 이 말을 통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도 있으며, 다른 이야기로 빠지거나 완전히다른 주제로 나아가기도 한다. 대화에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영감충전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대화의 법칙은 다음과 같다. 진부한 화제에서 새로운 포인트를 끄집어내서 전혀 새로운 화제로 접목시키기. 그렇지 않으면 연약한 대화 생태계가 멈춰버린다. 애완동물 이야기로는 단지 몇몇 모임에만 낄 수 있을 뿐이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분위기라면 별다른 주제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상황에 맞게 말하라

 

<대화로 기쁘게 하는 방법(Means to Obilge in Conversation)>을 쓴 자유사상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상적으로는 대화의 원천은‘숲에서 나오는 사슴처럼 갑자기 튀어나온다.’ 특별한 주제란 없다. 우리가 우상으로 여기거나, 욕망을 누르면서 따라야 하는 주제는 하나도 없다. 어디서 화제를 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충고는 간단하다. “상황에 맞게 말하라.” 이는 사리에 맞는 충고인 듯하다. 화제를 뜻하는 토픽(topic)의 어원인 그리스어 ‘토포스topos’는 ‘상황’을 뜻한다. 그러니 화제도 그 뜻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토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토피카(Ta Topika-공통의 문구에 대해)>에 나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 그것이 좋은 화제다. 그리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화제는 누구나 한마디씩 거들 수 있다.

 

 

 

 

특별한 화제는 없다

 

스캔들과 갈등은 대화에 양념이 되어왔다. 스캔들과 갈등을 결합하는 것도 적절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따끈따끈한 화제는 견해 차이나 단절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사소한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엇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는가. 우리가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화제는 기쁜 일, 취향에 대한 사소한 문제, 그리고 위험한 일이다. 삶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흥미로운 사건에 대해서도 대화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화제가 좋은지 혹은 나쁜지 하는 문제에 이르면 정신이 두 갈래로 나뉘어 계속 말다툼을 한다. 우리가 살인 사건에 벌벌 떨면서도 이에 대해 침 튀기며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TIP. 어색함을 메우는 대화 메뉴

 

1. 가십 (출생, 결혼, 불륜, 이혼, 죽음 등)

 

가십은 고대 영어 가드십(godsybb : 대부, 대모처럼 ‘정신적 친족’이라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지금도 사회적 접착제 역할을 하고 친척과 지인 간의 유대를 강화시킨다. 가족과 친구에게 일어난 일을 알아두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가십거리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사생활로 가득하다. 선정적인 이야기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당사자에게는 절대 이야기하지 못할 만한 화제를 소재로 삼는 한 가십이 나쁜 평판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가십을 적절한 대화 주제라고 본다. 개인이 고립되는 도시 사회에서는 가장 본질적인 분야이기도 하다. 점점 가족 기반이 약해지고, 사람 사이의 연결망이 넓어지면서 관계가 느슨해지고 있다. 이때 가십은 우정을 유지시켜 주는 최고의 수단이다.

• 위험 요소 : 상대방에 대한 잘못된 판단, 너무 많거나 적은 정보
• 기회 : 새로운 정보를 얻고, 기분 좋은 자극을 받으며, 우월한 입장임을 느끼게 된다.

 

2. 비밀 (진실, 거짓말)

 

친하지 않은 사람이 불필요한 고백을 하면 부담이 된다. 차라리 프로이트를 탓하고, TV를 탓하고, 피임약을 탓하라. 20세기에는 금기시 됐던 규칙들이 무더기로 사라졌다. 한껏 달아오른 미디어가 어떤 이야기든 해도 될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미용사나 바텐더와 대화하는 편이 낫다. 작은 장난이 이야기에 활기를 준다고는 하지만 그 뒷맛이 시큼하면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진솔한 대화로 유대 관계를 강화하려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중요하다.

• 위험 요소 : 악명, 뒤끝, 그리고 상대의 정체를 알고 있는가?
• 기회 : 상대의 비밀도 알게 될지 모른다.

 

3. 걱정거리

 

진짜로 대화를 끝내고 싶다면 걱정거리를 털어놓아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안녕하세요?’ 뒤에 이어지는 말에 신중해야 한다. 어느 조사에서 이스탄불 학생 중 30.4%는‘개인적인 문제’를 최고의 대화 화제로 꼽았고, 여학생 중 37%는 좀 더 거창하게 ‘학생들∙젊은이들 문제’를 꼽았다. 어떤 사람은 이런 화제만 편애하는 현상은 국가적 낭만과 우울의 풍조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나는 투덜대는 행동이 주는 즐거움을 알고 있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글처럼 좋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라면 말이다. 인간이 친구와 소통하면 두 가지 상반되는 결과가 나온다. 기쁨은 증가하고 슬픔은 반으로 나뉜다. 하지만 진짜로 대화를 끝내버리기 위해서 걱정거리를 털어놓을 수도 있다.

• 위험 요소 : 위신 행방불명, 자기 연민, 하품
• 기회 : 기분이 나아지게 한다. 문제를 분석해서 함께 웃게 된다.